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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부부의 날.. 노부부 통해 들여다보는 행복한 결혼생활

글쓴이: 시엘  |  날짜: 2014-05-21 조회: 1
http://woman.badakencoder.com//view.php?category=SUwfLFc2TzBFLw==&page=1&num=EBlOeRdv&stype=&search=   복사

'장충단 공원 은세계 속 당신은 천사였습니다'

'Miss 박에게. 오늘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아마 제가 태어나고 처음으로 느끼는 행복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비록 무표정한 나였지만 마음속으로 정말 즐거웠어요. 장충단 공원의 은세계 속에서 고즈넉한 Miss 박은 사람이 아닌 천사였습니다.'

서울대 사범대 대학원생이었던 김준호(85)씨가 첫눈에 반한 박시현(79)씨와 첫 데이트를 했던 1956년 3월 12일 밤에 쓴 편지다. 박씨는 당시 서울대 사범대 생물학과 3학년이었으니 캠퍼스 커플이었던 셈이다. 이렇게 시작된 편지 릴레이는 58년 11월 결혼한 뒤에도 이어졌다. 김씨는 충남 공주사범대학, 박씨는 서울 동덕여중에서 교편을 잡아 떨어져 살았기 때문이다. 김씨 부부는 박씨가 학교를 공주로 옮겨 살림을 합친 1961년 가을까지 주고받은 편지 330여통을 최근 책으로 펴냈다. '저도 양말 정도는 기울 수 있어요'(도서출판 따님)의 주인공인 이들 부부를 지난 16일 서울 강남구 개포로 대청오피스텔에서 만났다.
책 제목이 재미있다고 하자, 박씨는 "이 양반 어머니가 '대학 나온 며느리는 양말 하나 깁지 못한다'고 걱정하신다는 편지를 보냈기에 '저도 양말 정도는 기울 수 있어요'라고 답장을 했다"면서 그때도 웃음이 나왔는데 지금도 우습다며 호호 웃는다.

김씨는 "젊은이들이 연애나 결혼, 출산을 포기하다시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 우리의 이야기가 젊은이들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되기 바라는 마음에서 책을 내게 됐다"고 소개했다. 개인적인 연서를 공개하는 것에 반대했다는 박씨는 "그래도 책을 내기 위해 옛 편지를 다시 읽다 보니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아 즐거웠다"고 했다. 그 말에 김씨는 소년처럼 활짝 웃었다. "당신도 좋은 거죠"라며.

연서라고는 하지만 애정 표현은 그리 많지 않다. 사랑의 표현은 '꿈에서 당신을 보았다'는 정도가 고작인 이들의 편지 글은 학문에의 열정, 상대에 대한 독려가 대부분이었다. 생물학도로 다양한 실험을 해야 했던 두 사람의 편지에는 실험 기기가 모자라 마음껏 실험할 수 없었던 안타까움이 곳곳에 있어 그 당시 우리나라가 얼마나 살기 어려웠는지를 보여 준다.

박씨는 "이 양반 글 솜씨가 좋아 편지를 받을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면서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릴 만큼 글을 잘 쓰신다"고 말했다. 6차 교육과정 1학년 2학기 책에 '한반도의 소나무', 7차 교육과정 3학년 2학기 책에 '대숲의 사계'가 게재됐다고. 아내의 칭찬에 입이 함박 벌어진 김씨는 "이 사람은 그림을 잘 그려 한국서가협회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을 지냈고, 이 책에도 그림이 실려 있다"고 펴서 보여 준다.

박씨는 "이 양반은 사재를 털어 '여천생태학상'을 만들어 2008년부터 차세대 생태학자들에게 1000만원의 상금을 주어 연구를 돕고 있다"고 자랑했다. 김씨는 "본래 몸이 약해 골골한 나를 위해 간호사 역할을 계속 해줘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전부 할 수 있게 해줘 고맙다"고 했다.

주거니 받거니 서로에 대해 칭찬하는 노부부에게 상대방에 대한 불만은 없는지 넌지시 물었다. 김씨는 "이 사람이 고집이 있어 애 좀 먹었다"면서도 "그 고집 덕분에 우리 집 전통이 생겼다"고 했다. 김씨 집에는 저녁이 되면 전화벨 소리가 이어진다. 결혼해 분가한 3녀1남이 저녁 문안 전화를 하루도 거르지 않는단다. 또 딸들과 사위들, 아들과 딸, 손자 손녀 등 18명의 대식구가 방학 때마다 시간을 맞춰 함께 가족여행을 다니고 있다고.

"이 양반이 말을 높여서 가끔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말한 박씨도 "경어를 쓰는 아버지 본을 받아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경어를 써서 주위 어른들께 칭찬을 받았다"고 말했다. 불만을 털어놓으라고 멍석을 깔아놓으니 깨알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부부싸움은 했겠지 싶어 묻자 신혼 때 얘기를 꺼낸다. 공주에서 올라온 김씨가 거울에 묻은 얼룩을 보고 '살림을 잘 못 한다'고 박씨를 나무란 일이 있었다고. 그때 박씨는 마음이 크게 상했는데 결국 김씨가 사과의 편지를 보내 풀렸단다. 그 이후로는 부딪친 일이 별로 없다는 이들. 배우자의 못마땅한 점도 장점으로 껴안으니 부부싸움 할 일이 별로 없었나보다.

마침 21일은 부부의 날이다. 50여년을 화목하게 살아온 이들에게 젊은 부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박씨는 "서른 해 넘게 서로 다른 환경에서 생활한 사람들이 만났으니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 조금 참고 이해하며 지내라"고 당부했다. 김씨는 "불같은 성미의 내가 휴대전화와 이메일을 썼다면 어쩌면 아내와의 사랑을 지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면서 젊은이들도 가끔 편지로 사랑을 나눠 보라고 권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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